Noblessse Korea December 9, 2016

컴퓨터를 켜고 구글 검색창에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을 치면 대부분 비슷한 정보를 제공하는 링크가 뜬다. 내용은 이렇다. '여섯 살 때 부모 님을 따라 떠난 푸에르토리코 여행에서 처음 카메라를 잡았고, 그 카메라로 엄 마를 아주 잘 찍었다. 고등학교 시절 뉴욕 시의 한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였 는데, 그것이 앤디 워홀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앤디 워홀이 그를 <인터뷰>라는 잡지에 사진가로 추천했다. 그가 촬영한 마돈나, 에미넴, 랜스 암스트롱, 파멜 라 앤더슨, 데이비드 베컴,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힐러리 클린턴, 브리트니 스 피어스, 어맨다 르푸어, 레이디 가가, 앤젤리나 졸리의 화려한 사진은 폭발적 반응을 얻었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패션 잡지 커버를 장식했다. 2000년 들 어 그는 뮤직비디오, 라이브 공연 연출, 영화 제작에까지 성공하며 지금껏 사 진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라샤펠의 작가적 면면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 화려한 시간을 뒤로한 2006년 이후 작업을 살펴 보는 게 맞다. 2006년은 그가 상업사진 작업을 축소하고 순수예술 사진에 집 중하면서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해. "당시 제가 하고 있던 사 진은 더이상 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어요. 거기서 벗어나야 했죠. 그래서 매거진 사진을 그만두고 농장으로 이주해 새로운 작품에 몰두하기로 했습니

다. 큰 결단이었어요. 그런데 그 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갤러리에서 전화를 받았고 전시를 하게 됐죠." 일을 그만두자 새로운 일이 눈앞에 펼쳐진 것. 전 세계 주요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러브콜이 잇따랐다. 런던의 바비칸 센 터, 밀라노의 밀라노 왕궁, 대만의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등에서 대규모 전시를 시작으로 뉴욕, 푸에르토리코, 서울, 프라 하에서 회고전과 개인전을 열었고, LA의 LACMA(2012년),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2013년), 워싱턴DC의 국립초상화 미술관(2014년), 그리고 올해는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과 체코의 DSC 갤러리 등에서 그는 인간과 사회, 자연까지 폭넓은 메타포의 시각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스트리트 문화, 형이상학에서 불멸성에 이르기까지 영감의 원천 을 묻는 말에 무심히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자신의 어딘가 아닐까 싶어요. 그것들은 그냥 홀연히 내게 옵니 다"라는 그에게 11월 19일 아라모던아트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 <데이비드 라샤펠: 아름다움의 본질(DAVID LACHAPELLE: INSCAPE OF BEAUTY)> 이야기부터 물었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서울 전시 외에도 여러 가지 일로 바쁘실 것 같습니다.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년에 출판될 책을 준비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책으로 발표한 적 없는 지난 10년간 작업의 결과물을 실을 예정입니 다. 최고의 프로젝트가 될 거예요.

이번 서울 전시를 결정하는 데 지난 2011년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한 개인전의 성공이 큰 영향을 끼쳤나요? 네, 서울에

다시 돌아와 전시를 하게 되어 기쁩니다.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갖는 것은 사진가가 누릴수 있는 가장 흥미진진한 일이 고 일종의 특권이죠. 게다가 제 작업은 개념적이고 규모가 커요. 미술관에서 사진을 바라보는 것은 컴퓨터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전시는 제가 정확히 원하는 것을 대중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죠.

전시에서 선보일 신작을 미리 봤어요. 메시지가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은 보는 이의 해석에 달려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작품에서, 어떤 사람은 저 작품에서 감동을 느끼죠. 모든 사람이 이번에 전시하는 제 작품에서 감동을 느 끼길 바라요. 사람을 감동시키고, 움직이게 하고, 영감을 주는 것이 제 목적이니까요.

1990년대 미국의 본질을 은유적 내러티브로 사진에 담은 것이 눈에 띕니다. 사실 자국의 정치, 사회, 문화 현실을 모티 브로 하는 작가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많아요. 그들과 당신의 차별성은 뭔가요? 저는 저와 다른 작가를 비교하지 않아 요.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실현할 뿐이죠. 저는 제가 저 견고한 미술계(the art world establishment)의 일부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미술계 바깥에서 제 것을 하고 있고, 그것은 사람들이 보통 사진으로 하는 것과는 매우 달라요. 따라서 다른 작가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제 영감과 아이디어, 테크닉을 결합하고 다른 사람들과 팀을 이뤄 일하는 것만 으로도 머리가 꽉 차 있거든요.

당신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경계에 대한 모호성’입니다. 사진과 회화, 소수와 다수, 생명과 죽음, 사람과 짐승, 남성과 여성 등 상반된 성질을 이용한 경계가 보이죠. 그런데 그게 모호해요. 사실 전 명료함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 확히 무엇을 하길 원하고, 어떻게 그것을 성취할지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것 또한 해석에 열려 있습니다. 만약 당신 이 경계에 대한 모호성을 본다면, 좋습니다. 당신에게는 타당한 해석이니까요. 제 작품을 보는 당신의 경험이기 때문에 그것 또한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랜스젠더를 찍은 'Once in the Garden' 시리즈는 사실 매우 충격적이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이 작품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작품 속 여성은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을 함께 지닌 '여신'입니다. 매우 아름답고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그러면서도 인간적이죠. 저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좀 자유롭게 놔두길 바라요. 더 큰 이슈에 집중하기 위해서요. 다리 사이에 뭐가 있나 보는 그런 거 말고.

그 사진에서 나타나듯 당신은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도 종종 담습니다. 소수의 편에 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늘 제 관심을 끄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그들이 소수자인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그냥 '나의 사람들(my people)'입니다. 트랜스젠더가 사회 정치적 토픽이 되고 논쟁거리가 되기 훨씬 전부터 저는 그 친구들의 사 진을 찍었어요. 그건 그냥 자연스러움이었어요. 우리는 모두 아웃사이더고 친구였죠.

작품 'Aristocracy'에서는 상류 계층이 느끼는 삶의 지루함과 우월의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비행기의 충돌처럼 보이는 데, 2007년에 작업한 'Awaken' 시리즈의 몽환적인 느낌과 비슷하더군요. 저는 비행기의 충돌이라기보다는 비행기가 길을 잃은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비행기가 이색색의 구름 속에서 길을 잃는, 물질주의를 추구하다 길을 잃는 겁니다. 끝 이 없는 비즈니스 경쟁, 문명과 부와 지위의 끝없는 성장, 이 사회의 이동 속도, 이런 것 속에서 길을 잃는 거죠.

미래의 경치를 담아낸 'Land Scape' 시리즈는 세트와 무대 조명, 자연광을 이용해 미래적 신기루를 담아냈습니다. 절제 되고 치밀하게 계산한 사진이라는 점에서 독일의 유형학적 사진 분위기도 묻어 납니다. 이 세트는 할리우드 무대 디자 인팀과 제작팀과 협업했다고 들었어요. 세트제작팀이 매일같이 플라스틱 빈 용기를 모아서 스튜디오 안에 미니어처 세 트를 제작했어요.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생산하는 합성 물질이죠. 이런 플라스틱 폐기물로 정유 공장을 만들고 도시와 미니어처를 만들었어요.

폐기된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고요? 그런데 정말 아름다워요. 플라스틱은 우리 문화에 일종의 공업 혁명을 가져왔습니 다. 석유의 발견은 현재의 우리를 있게 했지만 한편으론 지구를 지속 불가능한 지점까지 성장시켰어요. 그래서 이 시리 즈는 정글 속에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뭐가 좋다, 나쁘다 말하지 않죠. 손가락질해가며 “저들이 나빠”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비행기를 타거나 플라스틱병 속의 물을 마실 때마다 우리 또한 그 일부니까요. 모두가 그 시스템의 일부예요. 그것이 우리의 역사고 미래죠.

당신의 사진 속 세트는 모두 직접 제작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래픽처럼 보이죠. 세트 작업 구성 시 어떤 부분에 가장 중 점을두나요? 많은사람이과정에초점을맞추지만전최종적으로인물이어떻게보이는가에중점을둬요.영화제작 과 비슷합니다. 컴퓨터를 이용하긴 하지만 그것으로 이미지를 제작하지는 않죠. 이미지는 실제로 발생한 장면, 제작한 세트,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사람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저는 사진의 아날로그 시대에 자랐고, 그래서 매우 아날로그적으 로 사진 작업을 합니다.

당신은 화려한 색감의 세트를 사용하면서도 감상자로 하여금 관심을 세트가 아니라 피사체에 향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 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당신만의 장치가 있나요? 제가 인위적으로 그들을 그렇게 이끌 수는 없어요. 관람객이 충분 히 오래 바라보고 이해할 만큼 제 사진이 흥미로운 거 아닐까요?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미술관의 현대미술 작품 앞에 머 무는 시간은 3초라고 합니다. 사람들을 카메라로 관찰해서 얻어낸 연구 결과죠. 제 목표는 사람들이 사진을 보다 오래 바라보고, 받아들이게 하는 겁니다. 작품을 오래 바라보면 레이어를 볼 수 있고 그 의미를 이해하거든요. 작품을 바라보 지 않는다면 그런 기회를 가질 수조차 없어요.

최근 작품 'Nativity', 'Self Portrait', 'Black Friday at Mall of the Apocalypse' 등을 보면 예전에 해온 상업사진에 이제 는 완벽히 거리를 두는 느낌입니다. 의도적인 건가요? 이전의 사진과 크게 구분을 두지는 않아요. 사진은 언제나 제가 느끼는 바를 표현하는 방식이었고, 제 작품에는 항상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러한 것은 바뀌지 않았고, 오 히려 진화했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현대미술 장르가 다양해지고, 예술과 상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해도 사람들은 늘 예술에 '아름다움'을 기대합니 다. 당신에게 아름다움이란 사진을 처음 시작한 1980년대와 지금, 같은 의미인가요? 모든 사람에게 아름다움의 의미 는 조금씩 다릅니다. 제게 아름다움은 일종의 도구예요. 그리고 제 사진은 사진을 가장한 정보죠. 사진처럼 보 이지만 사실은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예요.

어떤 정보인가요? 보는 사람이 찾아내야 하는 정보입니다. 때로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어요. 저는 그저 정보를 이미지의 형태로 전달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순수 사진, 광고 사진, 뮤직비디오, 영화 등 전방위 아티스트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 당신의 뮤직비디오도 꽤 좋아해 요. 모비의 'Natural Blues'를 처음 봤을 때를 잊을 수가 없죠. 사진과 다른 매력은 무엇인가요? 전 음악을 좋아하고, 다 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뮤직비디오는 대중문화의 일부죠.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면 미술계 내부에 갇혀 있지 않고 보다 다양한 세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계를 접하게 됩니다.

비주얼 아티스트들은 영화에도 욕심이 많더군요. 당신도 영화를 만들었고, 개봉해 좋은 반응도 얻었습니다. 당신에게도 영화가 꿈같은 어떤 것인가요? 영화 를 만들었지만, 그것은 제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제게 재능처럼 주어진 것이었어요. 어떤 부름(calling)이었죠. 하지만 전 정지 이미지가 더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는 시간의 속도를 늦춥니다. 이 세계는 현재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어요. 그에 반해 이미지는 시간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죠.

앞으로다시어떤부름이있다면또영화를만들건가요? 아니요.다시는그런부름을들을수없을겁니다.

앤디 워홀이 고등학생인 당신을 <인터뷰>지에 사진기자로 소개했을 때와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사진과 영상 분야에서 가장 파격적인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휴대폰 덕분에 보다 많은 이미지가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겠 죠. 그러나 모든 사람이 펜과 종이를 사용하게 되어 더 많은 위대한 작가가 탄생한 건 아니었어요. 같은 경우겠죠.

당신자신에게생긴큰변화라면요? 제게가장큰변화는시작점으로되돌아갔다는것,순수한열일곱살나의출발점 과 다시 연결되면서 제 삶이 그려온 나선형 곡선을 완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이 결합하 면서요. 제 삶과 작업을 결론짓는 것이 제게는 가장 흥미로운 일입니다.

열일곱 살에 한 작업은 어떤 것이었죠? 천국의 이미지, 사후의 세계나 영혼, 형이상학적 자연 사진, 인간의 형상, 영혼을 담은 그릇으로서의 몸. 그런 이미지입니다.

몇 년 전부터 재난, 환경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현대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누구에게나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양한 과거와 다양한 부름, 그리고 다양한 목적을 가 지고 있어요. 어떤 이는 감동을 주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이는 부정한 동기를 가지고 감동을 주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어내죠. 시장을 목표로, 투자자나 컬렉터 혹은 명성이나 돈을 목표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는 시장과 관계없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상업 활동을 했어요. 당시엔 추상표현주의 때문에 구상 작 업은 인기가 없었죠. 하지만 전 얽매이지 않았어요. 자유로웠죠. 상업 작품을 제작해 돈을 벌었기 때문에 제 작업을 할 때에는 무엇이든 제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어요. 갤러리나 미술관, 책에 실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제가 원하는 것이었 죠. 사람들이 제 작품을 살지, 안 살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당신은 누가 봐도 사진의 한계를 확장한 작가예요. 앞으로 현대미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사진의 진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단지 제가 앞으로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 할지 고민할 뿐이에요. 어떻게 세상 에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줄 수 있을지요. 엔터테인먼트에서 볼 수 있는 공포와는 반대 로 말이죠. 세상에는 어둠이 너무 많아요. 우리는 세상에 빛을 가져와야 합니다. 작가들은 그걸 할 수 있어요.

많은 작가가 아트 컬렉팅을 합니다.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부분도 있고 친분을 과시하거나 존경의 의미로 컬렉팅을 하 기도 하죠. 당신도 컬렉션이 있나요? 앤디 워홀의 작품을 많이 가지고 있고, 키스 해링의 작품도 많습니다. 키스 해링의 아주 중요한 작품은 최근에 팔았어요. 저는 주로 하와이에 머무는데 이 작품은 하와이에 갇혀 있기보다는 보다 많은 사 람이 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밖에도 윌리엄 블레이크, 로댕, 마티스 그리고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친구들의 작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앤디 워홀이나 키스 해링의 작품을 보면 그들과 함께 어울리던 기 억이 떠오르곤 하겠네요. 네, 앤디 워홀이나 키스 해링처럼 젊었 을 때 알던 사람들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컬렉션을 시작했어요.

한국에도 사진을 배우는 학생이 많습니다. 스튜디오마다 어시스 턴트도 많고요.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직감 (gut)과 내면의 음성을 키우려고 노력하세요. 모든 소셜 미디어와 기기를 끄고 조용히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앞으로 어떤 방향 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에는 질문이 필요하겠지만 그 대답을 들으 려면 스스로 고요해져야 합니다. 저도 고요해졌을 때 그 대답을 들 어요. 해답이 저를 찾아오죠. 그렇다고 제가 항상 수도사처럼 생 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씩 크레이지한 삶을 즐기곤 해요. 삶 은 균형을 이루어야 하니까요.

당신이 하와이에 머무르는 이유도 그러한 내면의 평화를 찾기 위 해서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꼭 하와이일 필요는 없어요. 이번에 서울에서 여는 개인전을 찾는 관람객 중에는 당신의 작품 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번에도 2011년 전 시 때처럼 그들에게 "작품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라"고 말할 건가 요? 작품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눈을 뜨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그냥 또렷하게요(Be open minded and open eyes. Don’t expect anything just be clear). 그럼 우리는 연 결될 겁니다(And then we will connect in that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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