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Korea December 8, 2016

다른 나라에서 했던 전시가 아니라 오직 이곳 서울 아라모던아트뮤지엄에
서 열리는 기획 전시다. 처음 전시장을 둘러봤을 때 기분이 어땠나어젯밤
에 서울에 왔고, 이 인터뷰 직전 전시장에 가서 사진이 걸릴 자리만
표시해 둔 빈 공간을 둘러봤다. 보통 어떤 전시든 갤러리를 둘러보
면서 직접 관람객처럼 걸으며 어떻게 하면 가장 사진을 돋보이게 할
것인지 고민한다. 주로 사진에 어울리는 공간 구성을 생각한다. 사
진에 어울리는 구성이란 게 뭔가 매거진에 실릴 목적으로 찍은 사진들
은 현실도피적이거나 유머러스하거나 진실을 깨는 작품이 많다. 최
근 10년에 걸친 개인 작업 사진들은 그보다 좀 더 깊이 있고 다층적
이다. 그래서 공간이 좀 더 필요하다. 나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들이
관람객에게도 감동을 주니까.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의미도 있
다. 좋은 노래 가사가 마음을 울리듯이 작품을 볼 때도 그런 경험
을 하게 만들고 싶다.
지난 2011년 첫 전시 이후 한국에서도 당신의 작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
었다. 당시 많은 리뷰들이 잡지나 인터넷에서 볼 때와 다르다고 했다 갤러
리에서 전시하는 경우 이미지 속의 구성 요소라든가 테크닉 말고
좀 더 본질적인 의미를 전하고 싶다. 셀러브리티를 찍었다는 것, 뭔
가 소비적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 말이다. 내겐 이 세상이 흘러
가는 방식보다 중요한 게 있고, 내가 교류하고 싶은 감정에 말을 걸
고 싶었다. 그게 상업사진을 그만둔 계기이기도 하다.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나 알다시피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무작정 뉴
욕으로 왔고, 앤디 워홀과 작업함과 동시에 많은 패션 매거진에 픽
업되면서 정신없이 일을 시작했다. 이후 인생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러면서 내 안의 목소리에 솔직하기 위해 나는 바뀔 수밖
에 없었다. 돈이나 유명세로부터 스스로 걸어나와서 말이다. 아마
나이가 든 거겠지. 늙은 게 아니라 성숙해진 것이길 바란다.
잡지의 역할이라는 게 상업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매거진에 대한 부
정적인 코멘트는 아니다. 내가 찍으려는 사진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뿐이다. 나도 잡지를 보면서 컸다. 내가 <인터뷰>에 픽업됐을 때
거기엔 살바도르 달리의 인터뷰와 앤디 워홀의 사진이 동시에 실리
곤 했다. 정말 어메이징했다고밖엔. 나는 잡지 인터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기억나는 작품들 중에 매거진에 실었던 ‘Jesus
is My Homeboy’는 돈을 받지 않고 촬영했던 시리즈다. 2005년에
<보그> 미국에 실었던 ‘The House at the End of the World’ 경우
도 개인주의와 강박에 관한 표현에서는 대단히 성공적인 결과물이
었다. 발행 석 달 전에 기획해 잡지가 나왔는데 마침 허리케인 카트
리나가 미국을 휩쓸고 가면서 너무 많은 질타를 받았다. 허리케인
이 오기 한 달 전에 찍은 사진이라는 걸 나중엔 사람들도 알았지
만, 나는 너무 힘들었고 한숨을 쉬어야 했다. 그때 ‘다른 일을 하자,
농부가 되자’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에는 그렇게 예상치 않은 여러
챕터가 있다. 돈은 오히려 쉽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더
어렵다. “오! 데이비드는 최고의 포토그래퍼야. 지금 가장 영향력 있
어”라는 말들…. 나도 당시에는 그게 달콤했다. 돈이 따라왔던 것도
사실이다. 내게 주어진 타이틀에 내가 들러붙어 있었다는 걸, <보
그> 사건 이후에 알게 됐다. 이걸 계속할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자연
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내 사진은 갤러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굉장히 화려하고 현란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자연에 파묻혀 산다니난 개


인적으로 여행도 가지 않는다. LA 스튜디오에선 일만 하고, 나머지
시간엔 항상 하와이 마우이에 있다. 물론 나도 사람을 좋아한다. 그
러나 다른 것들은 할 만큼 해 봤다. 파티? 나 열네 살에 뉴욕으로
온 사람이다. 지난 30년 동안 논스톱으로 클러빙했으면 됐다. 부숴
진 레코드처럼 같은 자리에서 계속 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성장
에 대해 생각해 보라. 나는 실제로 늦게 어른이 된 거다. 그렇게 미
쳐라 일하고 놀 때는 세상이 하도 빨리 돌아가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거기에 중독돼 있었다고 할까. 난 고등학교를 그만두었고 열일
곱 살 때부터 사진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 세계의 시작
이었고 내가 아는 전부였다. 관계 장애를 겪는 게 당연했고, 친구가
많지 않았다. 패션계 언저리에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번도 내가 완전히 그 세계 사
람이었던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당신을 그저 맥시멀리스트로 생
각하거나… 붐바스틱? OK. 나를 그냥 과장하
기 좋아하는 허풍쟁이로 오인해도, 이제는 다
르게 받아들여 줄 것 같다. 특히 이 전시 이후
엔 더욱. 학창 시절을 아주 고통스럽게 보냈

다. 내게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인간은
굉장한 일을 겪고 나면 이해의 폭이나 표현력 자체가 달라진다. 독
설이라 해도 누구나 의견을 말할 자격은 있다. 그런 단어들이 내게
영향을 주진 않는다.
당신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겠으나 리터치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
고 매우 놀랐다 리터치를 할 때가 있긴 있다. 그러나 20년 동안 리터
치 없이 아날로그로 사진을 찍어온 내게 보정이란 정말 사소한 도
구다. 물론 시간이 들고, 돈도 많이 들고, 세트를 직접 제작해야 하
고, 그러니까 세트 팀을 고용해야 하고, 해가 뜨거나 지는 시간에
맞춰야 하니 누군가는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트
팀과의 협업은 정말 협업이다. 마치 영화 한 편을 찍는 기분이다. 나
는 재능 있는 프로들과 같이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게 좋고 그들을
기계로 취급하고 싶지 않다. 포토그래퍼가 혼자 찍고 그걸 리터치
로 대충 해결해 보려는 방식은 싫다. 다들 사진을 보정하고, 아니면 영
상에 끼워넣고, 아니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에 느낌만 입히고…. 지금 시
대에 사진의 본질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나 좋은 펜과 종이를 가진 사람
이 많아지면 좋은 시가 더 많이 나오는 법이다.
당신의 휴대폰에는 어떤 사진이 있나 친구들이 웃긴 짓을 할 때? 사실
휴대폰을 거의 쓰지 않는다. 지난달에 아르헨티나에서 전화기를 잃
어버려 1주일간 없이 산 적도 있다. 소셜 미디어도 안 한다. 어차피
난 정글에 살아서 필요 없다. 아침에 일어나 밤새 걸려온 업무 전화
1시간쯤 하고 나면 끝이다. 업무가 끝나면 전화기 존재 자체를 잊어
버린다. 친구들은 다 안다. 내가 전화도 잘 안 받고 메시지에 답도
제때 보내지 않는다는 걸. 그런데 우린 바빠질수록 말이 많아지고
수다가 길어지고, 마음속에 있는 말은 점점 못하게 된다. 하지만 나
는 이런 거대도시 서울에서도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안도감과 말하면
들어줄 커넥션이 절실하다 나는 외로움을 잘 다루는 편이다. 군중 속
의 외로움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안다. 그런 기분을 느껴도 괜찮다.
그냥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의 포트레이트를 촬영한다면 글쎄, <엘르> 코리아가 오늘
찍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잘 느껴지는 사진으로.
올해 크리스마스 계획은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를 좋아했지만, 수년
전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를 떠올
리기에 좋은 시기다. 대신 나는 부활절과 추수감사절을 더 좋아한
다. 아마 친구나 가족과 하와이에 있을 것 같다. 아주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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